나쁜 소식 전하기 II

2024. 8. 28. 23:59완화의학/죽음과 심리적 이해

3단계 : 환자에게 초대받기 

 

 대부분의 환자들은 진단, 예후, 그리고 질병과 관련한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한 정보를 듣기 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도 있다. 의료진이 환자가 질병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싶어 하는지 분명해질 때까지 경청하는 것은 나쁜 소식과 관련된 환자의 숨겨진 불안을 드러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환자에게 사실을 직면시키는 것만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 사실로부터 숨는 것이 정신적 적응에 도움이 되고 이후에 점차 질병이 심해지면서 이에 대해 토의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정기적인 검사를 한 이후에 정보를 토의하면서 환자가 보이는 반응을 관찰하면 다음에 환자와 어디까지 토의가 가능할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검사 결과에 대해서 제가 어디까지 말씀 드리는 게 좋을까요?', '제가 환자분께 결과와 관련된 모든 정보나 대략적인 상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치료 계획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 위해 따로 시간을 갖고 얘기를 나누어도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만약 환자가 자세한 소식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런 경우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없는지,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원하는 정보를 이야기해 줄 수 있음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간혹 우리나라에서는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배우자나 자식이 대신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원하는 환자도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물어봐주는 것이 좋다. 

 

 

 

4단계 : 환자에게 지식과 정보 제공하기 

 

 나쁜 소식을 전하기 이전에 좋지 않은 뉴스가 있음을 미리 경고하는 것이 환자의 충격을 감소시키고 정보 전달 과정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행하지만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는 '유감입니다만...' 등의 말을 서두에 꺼내는 것이다. 

 

 의료적 사실을 전하는 것은 의사의 일방적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몇 가지 사실을 유념하면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대화할 수 있다. 

 

첫째, 환자 수준에 맞는 단어와 문장을 사용한다. 

둘째, 가급적이면 전문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이'라는 용어보다는 '몸에 퍼졌다'라든가 '생검'보다는 '신체 조직(또는 부위) 검사'라는 쉬운 말을 쓰는 것이 좋다. '몸속에 나쁜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라는 식의 단순 명료한 언급이 필요할 수 있다. 이렇게 쉽게 설명해주는 편이 환자가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실 파악을 제대로 못하며 나중에 분노를 폭발하거나 의료진을 비난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셋째, 정보를 조금씩 나누어 제공하고 환자가 정확히 이해했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넷째,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더라도 '더 이상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라는 식의 말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식의 태도는 나중에 환자가 받을 수 있는 통증 조절이나 증상 완화 치료를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단계 : 환자의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기 

 

 나쁜 소식을 전할 때 환자의 감정에 적절히 반응하는 것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이다. 환자는 침묵하거나, 믿지 않거나, 울거나, 부인하거나, 분노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나쁜 소식을 접했을 때 환자가 정신적 충격이나 고립감, 비탄 등의 감정적 반응을 나타낼 경우 의료진은 정서적 지지나 의료진이 끝까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연대감 등의 공감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다. 공감적 반응은 흔히 다음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 환자의 감정을 살핀다. 환자는 울먹이거나, 슬퍼하거나, 침묵하거나, 정신적 충격 상태를 보일 수 있다. 

둘째, 혼자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알아낸다. 만약 환자가 슬퍼 보이지만 침묵하고 있는 경우 개방형 질문을 통해 환자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인지를 묻는다. 

셋째, 그런 느낌의 이유를 찾는다. 물론 나쁜 소식과 관련된 문제겠지만, 확실하지 않다면 환자에게 묻는 것이 좋다.

넷째, 환자에게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할 시간을 준다. 또한 환자의 감정과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말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다음의 대화와 같다. 

 

의사 : 미안합니다만 영상 사진 결과 약물 치료의 효과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 불행히도 사진상 암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환자 : 저는 계속 두려웠어요. (울음)

의사 : (의자를 환자 쪽으로 조금 옮기면서 티슈를 건넨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저도 좀 더 좋은 소식이기를 바랐습니다만...

 

 환자의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렵다. 만약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면 환자가 차분해질 때까지 공감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료진은 환자의 슬픔이나 이와 관련된 감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예 : 저도 좀 더 좋은 소식이기를 바랐습니다만...). 환자가 침묵하면서 감정 표현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떤 말을 꺼내기보다는 환자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가 있다. 환자의 감정이 미묘하거나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실망과 분노를 표현할 때 공감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환자 : 그럼 저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약물 치료를 반복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의사 : 이런 소식은 마음 상하는 일이지요. 

 

 환자는 이런 소식을 전하는 의료진이 자신을 지지해주고, 공감하고, 질병 상태를 조사하고, 자신의 상태를 평가하는 중요한 자원임을 알고 있다. 이러한 의료진으로부터 공감을 받는다면 환자의 고립감은 낮아지고, 조금씩 건강한 감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6단계 : 치료 전략 짜기와 요약

 

 미래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는 환자는 불안과 불확실하다는 느낌이 낮아진다. 치료 계획을 세우기 이전에 환자가 이러한 문제를 상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좋다. 앞으로 가능한 치료 방법들을 설명하고 선택하게 하는 것은 법적으로 필수적인 부분일 뿐만 아니라 환자의 선택을 중요시한다는 암시가 될 수 있다. 환자와 함께 치료 계획을 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향후 치료 방법이 실패할 경우 책임을 함께 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흔히 환자는 치료의 목적이나 효과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해하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진의 경우 향후 치료 전략이 좋지 않은 예후와 관련되거나 환자의 고통을 수반할 경우(예 : 약물 치료에 의한 피할 수 없는 부작용 등) 이에 대해 토의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환자의 희망을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또한 의료진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환자의 감정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치료를 참고 견디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긍정적 부분만을 강조했던 경우에는 더욱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자신의 질병의 심각성과 치료의 한계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두렵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환자가 알고 있는 것, 기대하는 것, 앞으로의 희망 등을 토의하면서 의료진이 환자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치료 전략을 짜는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만약 환자가 현실성 없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경우 환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뒤에 숨겨진 두려움, 걱정,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실직,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 앞으로 겪을 고통에 대한 두려움,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지 모르는 자신에 대한 비참함 등의 감정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두려움과 걱정을 이야기하면서 환자는 현재 상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환자의 소망을 듣고 이를 반영한 치료적 전략을 짤 수 있다. 즉 고통을 피하고 싶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다 등의 소망에 적합한 치료 방침을 함께 토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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