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의 의사소통 Ⅰ

2024. 8. 23. 00:56완화의학/죽음과 심리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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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의 건강을 위하여 진단과 치료적 성공을 거두려면 환자와 의료인 간의 의사소통, 즉 의료적 면담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의료인들은 이러한 의료적 면담에 적응되어 있지 않다. 의사소통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환자는 불만을 갖게 되고 의료인은 필요한 정보를 적절히 얻지 못하거나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여 치료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바람직한 의사소통을 통하여 의료인은 환자가 단순히 질병을 앓고 있거나 고장 난 장기를 갖고 있는 개체가 아니라 숨 쉬고, 느끼고, 살아 있는 인간임을 인식하여 자신의 의료적 행위에 대한 사명과 책임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의료인을 찾는 환자의 심리는 복잡하다. 자신이 병이 있음을 부인하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행동을 하는 등의 퇴행을 보이기도 하며 불안, 우울, 걱정, 분노 등 다양한 감정 반응을 겪게 된다. 또한 나이에 따라 감정의 동요를 표현하는 형식이 다르다. 질병에 따라서는 응급실에 찾아온 섬망 환자처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만성적인 고혈압으로 외래를 찾아온 50대 중년 환자처럼 병에 대한 일반적인 의료 상식을 갖고 의료인과 병에 대하여 의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환자의 다양한 양상에 맞추어 변화된 면담 방식을 찾아내서 최선의 의료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의료인의 몫이다. 적절한 의사소통은 의료 행위의 효율을 높이고 원하지 않는 부작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기 환자와의 의사소통은 솔직함, 세심함, 배려 등의 요인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소가족 중심의 사회 체계가 되면서 말기 환자의 가족 중 주변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가족들은 건강과 삶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갖고 의료인을 대하게 된다.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가족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경우 본인에게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인은 흔히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시행해야 하는 것에 공포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말기 환자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다양성과 특수성을 고려하면 의료인은 주도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보다는 소극적으로 또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공포심을 덜려고 하거나 보호자로부터의 비난을 회피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과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의료진의 90%는 환자의 상태가 가망이 없음을 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비언어적인 방법을 통해 환자에게 전달되며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을 일으키게 된다. 일반적으로 의료진은 자신이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환자의 경우 시선을 회피하거나, 회진 시간이 짧아지거나, 대답을 얼버무리거나, 거짓된 친밀감 표현 등의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환자는 사회적 단서에 매우 민감한 상태이므로 의료진의 태도는 오해를 부르기 쉽다.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할지 난처한 입장이라면 자신이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만약 내가 지금 환자의 입장이라면 의료진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을까? 의료진이 내게 어떤 설명을 해주길 바랄까? 상태를 알고 난 이후에 의료진이 내게 어떤 태도를 취하기를 바랄까?' 등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태도를 좀 더 분명히, 자신감 있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말기 환자와의 대화에서 꼭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효과적인 의사소통 없이는 효과적인 증상 조절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의료 면담의 환경

 

 면담 환경은 정보를 공유하는데 있어 자발성과 공개성을 촉진할 수도 있고 억제할 수도 있다. 의료 면담에 있어 바람직한 환경이라고 생각되는 개인적이고, 안락하며, 충분한 시간을 모두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종합병원의 경우 바쁜 일정이나 공간상의 이유로 환자와의 면담에 개인적이며 안락한 공간을 제공받거나 시간을 충분히 갖는 데 많은 제약이 있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은 의료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것들을 지킬 수는 있다. 예를 들면 간소한 방에서 면담이 이루어질 때 환자의 자리가 너무 불편해 보인다면 즉시 편안한 의자를 2개 정도 구해와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주변의 소음 때문에 환자가 집중을 하기 어려운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면담 도중 전화를 받는 등 환자의 집중을 저하시킬 수 있는 요인들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이고 편안한 환경은 의료적 면담을 위하여 필수적이지만 완벽한 조건을 갖출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의사가 환자에 대해 배려를 하고 환자의 이야기에 최대한 집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어느 정도 문제가 되는 환경적인 요소를 보상할 수 있다. 

 

 의료인의 시간도 중요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의료인이 시간에 쫓기듯 환자를 본다면 환자는 즉각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환자의 중요한 증상을 간과하거나, 확인해야 할 상황에 대해 확인을 하지 못하거나,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지 않거나, 다음 외래 방문 날짜를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하는 등의 실수를 할 수 있다. 의료인은 차분하게 환자에게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하며 효율적으로 면담할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해야 한다. 

 

 의료적 면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료인은 기본적인 역할의 차이나 전문적인 지식의 차이 등과 같은 요인과 관계없이 동등한 두 개의 인격체가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료인과 환자가 각기 마주 앉아 시행하는 면담은 의도가 무엇이든 책상이라는 물리적인 도구가 실제로 또는 상징적으로 의료인과 환자를 가로지르는 장벽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의자의 높이가 달라 의료인이 환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상황도 환자에게는 위압적인 느낌이 들게 할 수 있다. 환자와의 면담에서 가능한 서로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순적인 이야기 같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동등한 파트너와 자신의 건강에 대해 상의한다는 느낌을 받을수록 의료진의 지시나 조언을 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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