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심리의 이해

2024. 8. 22. 18:21완화의학/죽음과 심리적 이해

쿼블러 - 로스 죽음의 5단계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처음 시행된 체계적인 연구는 1969년 쿼블러 - 로스 박사가 제시한 죽음과 관련한 5단계이다. 쿼블러 - 로스는 약 200명 이상의 죽음에 직면한 환자에 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심리적 상태를 단순화하여 5단계의 변화를 거친다고 발표하였다. 이 이론은 최근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1) 상기 이론의 타당성이 검증된바 없다는 것, (2) 좀 더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은 5단계로 묘사한 심리적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 (3) 일부 연구에서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심리는 기존에 제시된 5단계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치지 않고 각기 다른 과정을 거친다는 점 등이 주된 비판의 요지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없고 이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면 시대에 이와 관련한 선구적 연구를 시행하였다는 점과 이론 자체에 치명적 오류가 없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5단계 이론은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 1969)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죽음에 직면한 환자가 아래와 같은 5단계를 거치면서 심리적 적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부인 : 죽음과 관련한 사실, 정보, 현실 등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단계이다. 이는 일종의 정신적 방어기제이며 감정이나 양심 등의 정신 체계와 관련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흔히 진단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잘못된 정보에 매달리거나, 본인이 듣기 편한 사실만 골라 믿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현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 분노 : 이는 각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표출된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에게 화를 내며 자책하기도 하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흔히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겨야 하지?', '평생을 착하게만 살아왔는데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누구 때문이지?'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표현되는 양상은 개인적 성격 구조와도 많은 관련이 있다. 이 과정에서 치료자나 가족은 환자의 분노가 실제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환자에게 화를 내거나 수치심을 주기보다는 심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비판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환자의 분노를 수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 협상 : 흔히 이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이 처한 사회적 배경을 중심으로 신이나 절대자에게 귀의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노력도 시도한다. 죽음과같이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경우에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사랑이 깨진 경우에 '그래도 아직 친구 관계로 남을 수는 있겠지?'라는 식의 협상을 통해 문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의 경우 환자가 만족할 만한 협상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해결책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 우울 : 비통함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현재 직면한 사실은 극복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임을 인식하게 되면서 무력감을 느끼고 이와 관련된 감정적 고통을 표출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사람을 피하고, 많은 시간 동안 혼자서 슬픔과 괴로움을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준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 수용 : 분노와 같이 개인의 환경이나 성격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경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에 임박한 현실 속에서 긍정적 측면을 생각하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과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 단계는 죽음에 임박해서 거치게 되는 과정은 아니며 아직 죽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이 과정에 돌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이 과정을 거치기 전에 비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죽음과 관련한 5단계 이론은 반드시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어떤 과정은 생략되기도 하고 앞의 과정이 나중에 다시 재현되는 경우도 많다. 이 이론은 환자를 돌보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된 것이 아니라서 임상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는 아직 일치된 의견은 없으나 환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도움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충분한 활용이 가능한 이론이라고 생각된다.

 

 

 

기타 환자 심리 관련 이론

 

 버크만(Buckman, 1993)은 죽음의 5단계 과정을 비판하면서 죽음의 3단계 가설을 제안하였다. 쿼블러 - 로스는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인 심리 변화를 제안하였다는 것이 버크만의 주장이다. 버크만에 따르면 임종에 직면한다는 것은 또 다른 커다란 스트레스에 직면하는 것이며 환자는 지금껏 스트레스에 대응했던 방법으로 죽음이라는 스트레스를 다룬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주장처럼 죽음에 대한 반응은 기계적인 현상이 아니며 다양한 심리적 반응의 총합으로 행동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쿼블러 - 로스의 가설에는 임상 현장에서 흔히 관찰되는 불안, 좌절, 죄책감, 희망, 유머와 같은 정신적 방어기제에 대한 설명이 누락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버크만은 죽음에 대한 위협을 느낄 때 다양한 감정적 반응이 뒤섞이는 혼란스러운 초기 단계를 극복해야만 두 번째 단계인 만성적 질환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개인의 성격 특성 등에 의해 두 번째 단계는 나타날 수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죽음을 수용하고 심리적 동요가 적은 상태에 진입한다고 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초기 단계 : 개인의 성격적 특성과 관련되는 심리적 특성의 조합이 표현됨(예 : 공포, 불안, 쇼크, 분노, 부인, 죄책감, 유머, 희망, 절망, 협상 등)
  • 만성 단계 : 질병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다음의 특성을 보임 - (1) 초기 단계에서 나타났던 심리적 스트레스가 해결되면서 개인적 성격 특성과 관련된 심리적 특성의 표현이 감소됨. (2) 심리적 동요가 감소됨. (3) 우울증이 매우 흔하게 관찰됨. 
  • 마지막 단계 : 5단계 이론 중 수용의 단계에 해당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음. 환자가 심리적 압박은 지속되지만 정상적인 대화와 판단력을 유지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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