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1. 23:22ㆍ완화의학/완화 치료의 정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기존에 치료가 어렵다고 생각하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속속 등장하면서 질병의 완치와 재활이 의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생의 마지막까지 질병의 완치를 목적으로 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에 의해 과거처럼 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퇴원하여 집에서 가족들의 수발을 받다가 사망하는 경우보다는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투병하다가 사망하는 환자의 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환이 그러하듯이 질병의 마지막은 사망으로 끝나게 된다. 또한 이런 '가망이 없는 환자', '죽어가는 환자'는 의료적 치료의 실패라는 생각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보고 싶지 않은 환자'가 되어 의사에게서 방치되고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1970년대를 지나면서 죽음이란 인간의 손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임을 자각하고, 암 환자를 중심으로 한 많은 환자가 적절한 도움 없이 고통 속에서 사망하게 되는 현실을 직면하면서 죽음으로의 '마지막 여정'을 보다 쉽고 편안하게 도와주는 것이 의료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완화 치료는 palliative care를 일본에서 번역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 palliative는 고대 라틴어 palliativus에 어원을 둔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망토로 감싸준다'는 뜻으로 기저 질환의 치료가 아닌 이에 의해 발생한 증상이나 상태를 완화하는 것이다. 중세 프랑스에서도 palliative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의 의미는 라틴어와 같다. 상기 단어를 기반으로 현재 사용되는 용어가 완화 치료다. 아울러 WHO(2014)에서의 완화 치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완화 치료란 삶에 위협적인 질병에 직면한 환자와 가족에 대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이다. 통증과 기타 관련 문제, 신체적 · 정신 사회적 · 영적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정확한 평가 및 치료를 통해 문제를 예방하거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된 세부 지침은 다음과 같다.
● 통증 및 기타 괴로운 증상을 완화한다.
● 삶과 죽음의 문제가 일반적 과정임을 확인시킨다.
● 의도적으로 죽음을 재촉하거나 연기하지 않는다.
● 환자의 치료에 정신적 · 영적 측면을 통합한다.
● 사망에 이를 때까지 가능한 능동적으로 도울 수 있는 지지 체계를 제공한다.
● 가족에게 환자의 와상 기간 동안 또는 사망 이후 애도 반응 기간까지 적용할 수 있는 지지 체계를 지원한다.
● 환자 및 가족의 요구에 적합한 팀 체제로 접근한다. 필요시 애도 반응에 대한 상담을 실시한다.
●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질병의 경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 화학 요법이나 방사선 치료와 같이 삶을 연장하려는 치료와 결합하여 질병의 초기 과정부터 적용할 수 있다. 또한 괴로운 임상적 합병증을 관리하고 환자의 증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검사도 포함된다.
요약하면, 완화 치료의 목적은 생명 연장이 아니다. 지금의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죽음에 직면한 환자 및 가족의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다양한 치료 방법을 고민하고 다각적인 치료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완화 치료의 역사
완화 치료의 역사는 호스피스에서 비롯된다. 호스피스란 라틴어인 hospitium에서 비롯된 말로 환대(hospitality)를 의미한다. 이 말은 중세 유럽과 지중해 지역에서 여행자나 순례자가 쉴 수 있는 지역을 의미했다. 종교적인 지시에 따라 건설되고 운영되면서 이러한 장소는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 온 여행객이나 질병에 걸리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접대와 보살핌을 제공하게 되었다. 호스피스는 잠시 동안 사라졌지만 19세기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종교적 사명에 따라 말기 환자를 관리하는 곳으로 다시 생겨났으며, 치유가 불가능하거나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숙소를 제공하거나 보살핌을 제공하기도 했다.
현대의 의미에서 호스피스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가 1967년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의 문을 연 것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당시 눈부신 의학적 발전에 힘입어 많은 질병의 완치가 가능해졌지만 이로 인해 의료 체계가 완치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손더스(주 : 간호사 출신으로 이후에 사회 사업을 공부함)는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무시되고 있는 말기 질환의 고통에 대해 공부를 지속하였고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설립한 후에도 환자를 지속적으로 보살피면서 환자가 겪는 고통이 다각적 원인에 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심리적 · 정신적 · 영적 지지가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필요함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관찰이 현대 호스피스와 완화 치료의 기본적 토대가 되었다.
'완화 치료'라는 용어는 1975년 캐나다의 외과 의사인 발포어 모옹(Balfour Mount)이 처음 사용하였다. 완화 의료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모옹 박사는 손더스 박사의 제자이기도 하다. 캐나다 퀘벡으로 돌아온 모옹 박사는 호스피스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그 이유는 호스피스란 용어가 '궁핍'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모옹 박사는 왕립 빅토리아 병원에 병원을 기반으로 하는 포괄적인 서비스를 개발하였다. 완화 치료라는 이름하에 입원, 자문, 자택 관리 프로그램, 애도 반응의 관리와 지지를 포함하는 '완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적용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초기 자원봉사 체계의 호스피스 운동이 최근에는 완화 치료라는 이름으로 의료적인 체계와 결합하면서 보건과 복지 영역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3월 강릉 갈바리 의원(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서 임종자 간호를 시작한 것이 호스피스의 시초이며, 1991년에는 한국호스피스협회가 창립되어 말기 환자에 대한 다양한 도움이 지속되어 왔다.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완화 치료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2005년 국가 암 관리 사업 지원단을 창설하여 공공기관에서의 완화 치료를 격려하였으며, 2015년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완화 치료 전문병원 지정에 관한 고시를 하는 등 특수한 질병에만 관련된 치료가 아니며 지역사회의 연계가 필요한 치료이다. 따라서 향후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환자가 원하는 곳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현재 혼용되는 완화 치료와 호스피스의 개념 정리가 좀 더 명확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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